• 최종편집 2024-04-13(토)
 
▲ 오휘 CF 콘티

CF 촬영이 이루어지기 전에 감독이 연출하고자 하는 느낌 그대로를 그림으로 표현해내는 작업을 하는 사람이 바로 CF 콘티 작가이다. 예전에는 수작업으로 이루어지던 CF 콘티 작업이 최근에는 컴퓨터그래픽으로 작업 되고 있다. 이 분야에서 벌써 10년째 경력을 쌓고 있는 이미혜 작가를 만나보았다.

나는 한때 화가의 꿈을 꾸었던지라 궁금한게 많았다. 우선 CF 콘티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알고 싶다는 나의 첫 질문에 그녀는 명쾌한 비유를 들어 알기 쉽게 설명을 해주었다.

“CF 콘티는 마트 시식코너의 구워진 만두라고 생각해요. 만두를 광고라고 한다면, 굽는 아주머니는 광고회사가 되겠지요. 그리고 녹말 이쑤시개를 사용해서 광고를 찍어 맛보는 고객이 광고주가 될 거고요. 다시 말해 CF 콘티란 광고주가 맛보기 좋게 미리 만든 광고 샘플이에요.
광고주가 맛있다고  하면 광고 제작에 들어가겠죠. 제가 하는 일은 제작 전 단계에서 광고 아이디어를 구체적인 이미지로 시각화하는 일이에요.”

샘플로 만든 작업을 통해 광고주를 설득하도록 하는 작업물이 CF 콘티인 것이다. 그러려면 감독 못지않은 연출력이 있어야 한단 생각이 들었다. 나의 질문에 그녀는 자신의 경우를 솔직하게 담아 이야기를 풀어냈다.

“회화를 전공한 제가 스토리가 있는 이미지를 작업 하려니 처음엔 감이 안 잡히더라고요. 가장 도움이 되었던 것은 CF 동영상을 많이 보고, 7~10컷 정도 나눠 캡처한 이미지에서 감을 얻는 것이 었어요. 그리고 많은 작가분의 콘티를 보고 좋은 느낌을 캐치하고, 무수히 많은 작업을 정해진 시간 안에 완성해 보는 훈련이 필요 했어요. 분야를 가리지 않고 광고 이미지, 잡지 사진, 회화, 일러스트 등 많은 이미지를 보고 광고의 느낌을 읽는 훈련도 큰 도움이 되었어요.”

“회화 전공으로 CF 콘티 작업을 하는 것이 영상 전공자의 비해 쉽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반면 드로잉이나, 표현력은 그림을 전공 하지 않고 영상만 전공 한 사람 보단 도움이 많이 되었을 것 같아요. 어떤가요?”

“회화는 영역이 광범위해서 도움이 되는 부분이 많은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소묘력이 큰 도움이 되었어요. 수작업의 여러 재료를 다루는 능력도 컴퓨터 작업 도구를 더 유연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해준것 같아요. 특히 일러스트 작업할 때 회화를 전공한 것이 큰 힘이 돼요."

“제가 알기엔 CF 콘티를 스케치로 하는 경우도 있던데, 실사처럼 채색이 완료된 콘티 작업을 하셨어요. 두 가지의 콘티가 사용되는 분야가 다른가요? CF 제작 과정이 궁금해요.”

“콘티는 크게 손 그림 스타일과 실사 스타일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아요.두 가지 모두 영화나 연극 등 콘티가 필요한 모든 분야에 폭넓게 쓰이는데 손 그림 스타일은 자유로운 표현력이 강점이고 실사 스타일은 마치 CF를 찍어 이미지 컷을 나눠 놓은 듯 실제 CF를 보는 듯한 생생한 전달력이 강점이라고 생각해요. 따라서 분야가 나뉜다기보다는 관점에 따라 쓰임새가 다르다고 할 수 있겠죠. 개인적으로 완성도 높은 이미지를 선호하는 저의 취향 때문에 실사 위주로 작업해 왔어요.”

CF 콘티 작가의 스타일에 따라 작업물이 스케치 혹은 채색이 완료된 실사 스타일로 나오기도 한다면 스케치 작업물이 시간대비 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에 대해 질문하고 싶었지만,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기로 했다.

“이 분야 경력이 10년이 되었네요. 사실 졸업과 동시에 첫 직장을 선택하는 것은 내가 앞으로 어떤 길을 가게 될지 결정짓는 중요한 일이기도 한데, 어떤 경로로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나요?”

“회화과를 졸업하고 제 전공인 그림 그리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자연히 일러스트에 관심이 있었고 지인으로부터 알게 된 광고일러스트 작가분을 만나게 되었어요. 시기적으로 제가 그분을 만났을 때 그분은 CF 콘티를 접하게 되었고 저도 자연스럽게 그분 밑에서 콘티 작업할 기회를 갖게 되었어요. 작업의 빠른 속도와 소묘력을 절실히 요구하는 콘티라는 분야는 제게 아주 매력있게 다가왔어요.”

졸업 후 첫 직장으로 선택한 곳에서 나의 천직을 발견하는 것은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졸업 후 이직을 하기도 하고 우여곡절의 세월을 보내기도 하는지. CF콘티 작가들도 직업에 애로사항이 있을 것이다. 질문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정말 힘들게 일을 할 때는 4일 밤을 한 시간도 못 잘 정도로 바쁠 때도 있었어요. 이틀 밤은 다반사이고요. 일이 적당하게, 제가 소화할 분량만 들어오면 좋은데 그렇게 받고 싶어도 그럴 수 없을 때도 있어요. 그럴 때가 가장 힘들어요. 체력도 체력이지만 시간에 쫓기는 고통이 정말 사람 잡아요. 그 스트레스가 가장 커요. 광고업계분들이 밤샘 작업으로 많이 고생하세요. 거기다가 시간에까지 쫓기니까 예민해지시기도 하고 저 역시 예민해져요. 그럴 때가 가장 힘든 것 같아요.”

“그렇더라도 이 일을 10년 넘게 하게 된 이유는 자신의 일을 사랑해서 그럴 수도 있고, 또 역시 보수도 무시할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보수는 어떤가요?”

“작가마다 다양할 텐데 컷 당 단가로 받고 짧은 기간에 여러 컷을 작업하니 고소득이라고 할 수 있어요. 꽤 자유로운 직업이어서 다른 분야의 전문성도 함께 할 수 있어 매력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점은 결제가 늦는 편이고 수입이 불규칙적이니 꾸준히 작업하는 것이 중요해요.”

힘든 만큼 보람 있는 직업이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유명한 스타를 볼 기회도 많을 것이고, 관련해서 가벼운 질문을 이어갔다.

“많은 분이 연예인 볼 기회가 많이 있을 것 같다는 질문을 하셨어요. 그런데 보기와는 다르게 화려하지 않은 직업이에요. 골방에서 민낯으로 밤을 새워가며 컴퓨터에 앉아 작업하는 외로운 직업이에요. 내향적이고 묵묵히 앉아 작업하기 좋아하는 저의 성향과는 잘 맞아 그동안 꾸준하게 작업했던 것 같아요.”

▲ johnnie walker 광고일러스트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답변이었다. 상상하기에 왠지 화려할 것 같은 배경은 골방에서 혼자만의 싸움을 지속해서 하는 장면으로 바뀌었다. 갑자기 어떤 방법으로 작업하는지 궁금해졌다.

“작업 과정은 간단히 말해 사진을 토대로 필요에 맞게 리터칭 과정을 거친 다음, 실 사진에 가깝게 마무리하는 방식이에요. 짧은 시간에 통일감을 갖고 컷의 완성도를 최대한 높여주는 것이 저의 일이에요. 주로 포토샵과 페인터로 작업하죠. 처음에 콘티를 연습할 때는 수작업으로 했어요. 많은 작가분들의 그림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익히며 배워 나가는 과정을 거친 뒤에야 컴퓨터로 작업을 시작했어요. 짧은 시간에 실사에 가까운 이미지를 만들어 내기에는 컴퓨터는 좋은 도구에요. 콘티는 이틀에서 삼일 안에 작업을 완료해야 하는데 때에 따라서 컷이 많을 때는 이삼십 컷의 많은 분량을 작업해야 하거든요. 그리고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실사 촬영을 거쳐요. 촬영은 실사 스타일의 콘티를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에요. 작업은 정해진 순서가 없어요. 콘티 내용에 따라서 매번 달라지죠. 매번 새로운 이미지를 생산해 내야 하기 때문에 유연한 감각이 적용되는 작업이에요.”

삼일 내에 실사에 가까운 장면을 자연스럽게 그려내는 CF 콘티 작업은 테크닉과 많은 훈련을 통해 익숙해진 연출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 되는 작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히 이 분야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배울 수 있는 학원이 있을 것 같았다.

“CF 콘티 작가가 되려면 어떤 교육을 배워야 하나요? 대학교에 관련 학과가 있나요?”

“요즘은 일부 대학에서 과목으로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저의 대학생 시절에는 콘티라는 분야는 들어보지 못한 생소한 분야였어요. 입문하기에는 쉽지 않은 업종인 것 같아요. 대행사의 많은 분도 콘티는 희귀업종이라고 하시더라고요. 관심이 있다면 충분히 접할 수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아직은 경쟁이 심하지 않은 직종이군요. 그림을 직업으로 하면서 보수도 높은 편이라 밤샘작업에 익숙한 분들은 좋은 직업인 것 같아요. CF 콘티 작가가 되길 원하는 청년들을 위해 꼭 이것만은 알아야 할 것이 있다면?”

“회화, 일러스트, 콘티 등 이미지 관련 직업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서로에게 영향받고 영향을 끼치며 조용히 성장 해 나가는 것 같아요. 많은 작가분들이 계시고 그분들이 좋은 작품을 해 주시므로 제가 영감을 얻었고 유연한 마인드로 저의 작업을 업그레이드 해왔어요. 그래서 지금의 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이미지를 생산해 내는 원동력은 '감사' 인 것 같아요. 겸손한 맘으로 감사로 작업할 때 작업의 과정이 행복하고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전 꽤 행복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콘티 작가 만으로 국한되고 싶지 않아요. 제 인생의 여정이 그림쟁이로서 다채롭기를 원합니다. 컴퓨터 작업을 주로 하고 있지만, 전공을 살려 회화작업도 계획 중입니다.
콘티 작업을 하다 보면 가족의 도움이 필요할 때가 많이 있어요. 그럴 때마다 저와 전공이 같은 남편이 제게 큰 힘이 됩니다.
CF 콘티라는 분야도 재료의 한계를 넘어 창의적으로 구상하고, 이 분야를 존중하며 자유롭게 사고하길 원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시간 안에 작업해야 하는 부담이 있는 직업이니 각오가 필요하고요. 입문하기 쉽지 않다고 해서 포기하진 않았으면 좋겠어요. 많은 경력이 있어야 하는 직업이니 경험이 없는 청년에게 콘티의 기회가 쉽게 찾아오진 않지만, 꾸준히 준비하다 보면 어떤 방향으로든 기회는 옵니다.”

‘회화, 일러스트, 콘티 등의 이미지 관련 직업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미혜 작가의 마지막 말에서 꾸준히 연구하는 모습을 발견했다. 창작의 작업은 사고의 탄력성이 필요하다. 아티스트는 젊다는 생각이 든다. 새롭게 생각하고 정체되려 하지 않는 노력이 젊게 사는 것이 아닐까?




[이미혜 작가]
회화전공.
2003년 부터 광고 대행사 및 프로덕션 CF콘티 제작.
현재까지 1000여편 콘티제작.
기업 일러스트 johnnie walker , 맥도날드 , 삼성생명 , cj제일제당. 다수 기업시안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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